
[Warhammer 40,000]의 인류중심주의가 SF 팬덤에서 자주 분탕의 언어가 되는 이유는,
단순히 스페이스 마린이 멋있고 제국의 군사 이미지가 강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.
물론 그 쾌감도 있다. 파워아머, 볼터, 황제폐하를 외치는 광신, 성당과 전함과 해골 장식이 뒤섞인 제국의 이미지는 분명 강력하다.
하지만 더 본질적인 문제는 그 이미지보다 사고방식 쪽에 있다.

[Warhammer 40,000]은 공존이 실패한 세계다.
외계종은 대화 가능한 이웃이라기보다 생존을 위협하는 재앙으로 등장하고,
카오스는 관용과 호기심과 욕망의 틈으로 세계를 오염시키며, 제국은 그 지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지독한 지옥이 되어버린 체제다.
이 자체는 작품 안에서 풍자이자 비극으로 작동할 수 있다.그러니 그냥 그 자체로 즐기시는 분들은 계속 그러셔도 된다.
문제는 이 세계관의 결론이 팬덤 바깥으로 넘어오는 순간이다.
"그런식으로 넘어왔을때" 워해머식 인류중심주의는 “이런 끔찍한 세계도 있다”는 장르적 조건이 아니라,
“원래 우주는 그런 것이며, 그러니 공존이나 윤리를 말하는 건 순진한 소리”라는 냉소의 논리로 바뀐다.
그래서 진짜 위험한 것은 “인간이 우선이다”라는 주장 그 자체보다,
공존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시도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태도다.

좋은 SF는 대개 공존을 쉽게 낙관하지 않는다. [스타트렉]이든 [컨택트]든 [아바타]든,
진지한 공존의 서사는 “서로 대화하면 모두 친구가 된다”는 유치한 믿음 위에 서 있지 않다.
오히려 오해, 폭력, 제국주의, 번역 불가능성, 공포, 이해관계의 충돌을 먼저 깔아놓는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존재와 관계 맺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.
성공을 보장받아서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, 실패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이 장르의 윤리다.

그런데 워해머식 냉소가 커뮤니티에서 무기로 쓰이면 이 질문은 시작되기도 전에 기각된다.
“대화해봐야 죽는다.” “외계인은 결국 적이다.” “윤리는 평화로운 세계에서나 하는 사치다.” “가혹한 우주에서 그런 이상론은 통하지 않는다.”
이 말들은 겉보기엔 현실주의처럼 보이지만, 사실은 타 작품의 질문을 읽지 않기 위한 아주 편한 방패다.
작품이 어렵게 구축한 갈등과 선택의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도,
“그냥 익스터미나투스가 답”이라는 밈 하나로 모든 윤리적 상상력을 눌러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.

재차 강조하지만 [Warhammer 40,000] 자체를 단순히 문제적 작품으로 싸잡아 몰아붙이는 건 위험하다.
제국은 작품 안에서 이상적 국가로만 그려지지 않는다.
그것은 미신과 광신, 관료주의와 전체주의, 인간 생명의 소모와 끝없는 전쟁으로 굴러가는 괴물이다.
워해머의 암흑성은 바로 그 모순에서 나온다. 제국은 끔찍하다. 그런데 우주도 끔찍하다.
제국은 비판받아야 할 체제다. 그런데 그 체제 없이는 인류가 버틸 수 없어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.
이 불편한 양가성이 워해머의 매력이고, 동시에 오독의 통로다.
작품 안에서는 “이렇게까지 망가진 세계”에 대한 블랙코미디와 비극이던 것이,
팬덤에서는 종종 “결국 강경한 인류중심주의가 옳다”는 식으로 납작해진다.

특히 다른 SF의 토론장으로 넘어가면 그 납작함은 더 공격적이 된다.
[아바타]가 인간 제국주의의 폭력과 비인간 세계의 존엄을 말할 때, 워해머식 독법은 그것을 “인간을 배신하는 순진한 이야기”처럼 몰아간다.
[스타트렉]이 낯선 문명과의 접촉 윤리를 말할 때, 그것을 “타이라니드 한 번 만나면 정신차릴 놈들”이라고 조롱한다.
하지만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본인들의 세계관의 강제 이식에 가깝다.
워해머의 우주는 공존이 무너진 이후의 악몽인데, 그 악몽의 결론을 들고 와서 공존을 아직 포기하지 않은 작품들을 비웃는 것이다.
결국 워해머의 인류중심주의가 위험한 진짜 이유는, 그것이 제국을 멋있게 보이게 해서만이 아니다.
제국이 포기한 것들, 즉 이해와 공존과 윤리적 망설임을 마치 성숙한 현실인식처럼 보이게 만든다는 데 있다.
[Warhammer 40,000] 안에서 그것은 실패한 우주의 비극일 수 있다. 하지만 팬덤 바깥에서 그것은 너무 쉽게 냉소의 만능열쇠가 된다.
“가혹한 세계에서는 그런 거 안 통한다”는 말은 강해 보이지만, 때로는 가장 게으른 말이다.
왜냐하면 그 말은 실패 가능성을 견디며 질문하려는 태도 자체를 비웃기 때문이다.
SF가 의미 있는 이유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윤리, 아직 도착하지 않은 공존, 아직 불가능해 보이는 관계를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.
워해머식 인류중심주의가 분탕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 상상력의 문 앞에서 “들어가 볼 필요도 없다”고 말할 때다.
제국을 좋아하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, 제국이 살아남기 위해 잃어버린 것들을 우리가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으로 착각하는 일이다.